처음 마음을 잊지 말자

-법정스님-

경전에 ‘처음 발심할 때 곧 깨달음을 이룬다’는 말이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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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생각 일으켰을 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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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예전부터 초심(初心)을 지키라고 당부한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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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우연한 일 같지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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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그 한 생각을  일으켜 자기 짝을 만나 살아오고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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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에는 그 사람이 없으면 못살 것처럼 여기던 사이도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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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진 세상을 살아오면서  그 처음 마음은 어디론지 사라지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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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범속하고 시들한 일상인으로 주저앉고 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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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고 견디면서 잘 살다가도 처음 마음을 까맣게 잊은 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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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로는 서로 미워하며 갈라서기도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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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살던 집을 등지고  부모 형제와 친지들을 떠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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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출가 수행자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도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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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서 누가 부르거나 기다리지도 않는데  한 생각을 일으켜 새 길을 찾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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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안이한 일상에 젖으면 간절했던 처음 마음을 망각한 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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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무엇  때문에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는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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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 수 없는 행동거지가 여기저기서 드러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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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고 많은 길을 두고 어째서 하필이면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는지

스스로 묻는 일조차 없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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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수행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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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의 처지를 순간순간 살피지 않으면 그 누가 됐건 세속사에 물들고 만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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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즐겨 외는 휴정선사의 가르침이 있다.

‘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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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고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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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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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예와 재물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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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사를 면하려는 것이며,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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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계의 고뇌에서 뛰쳐나와  수많은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서다.’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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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와 같은 간절한 법문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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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행자로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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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을 이루고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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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인연으로였건 간에 처음 절이나 교회를 찾아갈 때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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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절하고 조심스런 그 초심이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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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일들에 눈과 귀를 팔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빛이 바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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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앙생활을 한마디로 하자면 몸과 말과 생각, 이 세 가지를 맑히는 일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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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으로 하는 행동과 입으로 쏟아내는 말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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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속으로 하는 이런저런 생각 등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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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자신의 업을 맑히기도 하고 흐리게도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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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마다 자신의 현재 처지를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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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 절이나 교회를 찾을 때의 그 간절한 생각과 염원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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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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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동안 쓸데없는  세속사에눈과 귀를 팔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

​

 반성해 보아야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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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절에 오래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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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간혹 절이 무엇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보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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훨씬 그 믿음의 질이 낮은 수가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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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사람들은 초심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신앙생활이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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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팔려 있기 때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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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자신에게도 득이 되지 않고, 듣는 쪽에서도 득이 되지 않으며,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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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말을 전해 듣는 제삼자에게도  전혀 득이 되지 않는 말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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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지 못하고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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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입이 재앙의 문’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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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은 보고 듣는 대로 쏟아내지 말고  믿음의 채로 걸러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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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로운 말만을 내보내야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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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또한 업을 맑히는 수행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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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환절기에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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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앞에 진정한 봄이 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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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산방한담(山房閑談)

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9년 04월-